11월 20일은 올해 들어 첫 눈이 내린 날입니다. 누군가는 첫사랑의 아련한 추억을 떠올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종종 걸음으로 손수레를 끌고 버려진 박스를 찾기 위해 골목 어딘가를 헤매고 있을 이름 모를 독거노인의 뒷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리는 건 혼자만의 감상이 아닐 거라 믿습니다. 많은 이에게 첫눈은 하늘이 내려준 축복으로 다가오지만 남몰래 눈물 흘리는 상처 받은 사람에겐 또 하나의 버겁고 미끄러운 짐일 수밖에 없는 탓이죠.
지난 20일 20~30대 기부자들의 모임으로, 뜻 깊은 자리가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기부로 큰 감동을 주고 계신 김용택 선생님의 특강이 있었기 때문이죠. 김용택 선생님께서는 아름다운재단 기부자들을 초청해 ‘세상을 아름답게 사는 삶의 지혜’라는 주제로 2시간 동안 소중한 말씀을 전해주셨습니다.
학생에서부터 직장인, 그리고 대학을 졸업한 딸과 함께 시인의 특강을 들으러 오신 어머니도 자리를 함께 하셨지요. 시인님의 강의가 시작하기 전 김미자 기부자님께서는 딸 아이 수민이에게 선물할 시인님의 책 ‘콩 너는 죽었다’에 직접 사인을 받으러 오셨다고 소녀처럼 해맑게 웃어 보여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켰습니다.
시인님의 강의를 어떻게 글로 다 옮길 수 있을까요. 환경과 문학, 그리고 정치와 삶과 예술 등 모든 분야를 총망라한 시인님의 말씀 속에서 우리는 깊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지요. 다른 기부자님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은 주옥같은 말씀을 한 두 마디 소개할까 합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사회생활을 할 때 글을 쓰고 사는 사람은 10배 정도 삶을 앞서 나가게 되지요."
"건성으로 사니까 늘 우리는 손해를 봅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보고 사는 것이죠. 자세히 보면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결국 우리와 관계를 맺게 됩니다. 관계가 건강한 사회는 건강할 수밖에 없어요."
"지성인의 가장 중요한 것은 낙관주의입니다. 낙관이 없는 지성은 지성이 아니죠. 그것은 미래를 믿고 희망을 믿는 것이죠. 미국 국민은 위대합니다. 버락 오바마가 당선된 것만 봐도 우리에게 미래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죠."
시인님은 강의 내내 참석자들을 크게 웃게 만들며 분위기를 고조시키셨지요. 강의실의 그 열기를 직접 전할 수 없는 게 아쉬울 따름입니다. 하지만 시인님께서 "요즘 나라를 생각하면 잠이 안 올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라며 탄식하시던 대목에선 숙연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요. 시인님은 그러나 희망을 버리지 말자면서 우리들을 격려하셨는데요. "행복은 사소한 것에서 오는 겁니다. 빗방울 한 개에서 눈송이 한 개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이죠."
끝으로 시인님의 마지막 일갈(一喝)이 강의가 끝난 뒤에도 큰 여운으로 남아 귓가를 때립니다.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할 것은 ‘그게 진실이냐, 진실이 아니냐’ 일 뿐 욕망과 욕구를 사랑해서는 안 됩니다.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려고 하다 보면 욕망과 욕구가 끝없이 생기게 됩니다."
이제 한해도 저물어 2008년도 한 달하고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뒤안길에서 신음하고 고통스러워 하는 상처 받은 영혼들이 너무 많습니다. 주변을 둘러볼 수 있는 넉넉함이 필요할 때라고 믿습니다. 12월 6일 청계광장에서 또 한번의 뜻 깊은 자리가 마련돼 있는 거 다들 기억하시죠? 기부자 분들과 많은 나눔 천사들의 관심이 절실한 때입니다. 그럼 모두 건강한 모습으로 씩씩하게 청계광장에서 만나 뵙길 기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