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 같이 쓰실래요?"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는 날. 이런 말을 듣는다면 어떤 기분일까요? 
얼마전 아름다운재단 기부자님에게 메일을 한 통 받았습니다. 거기에는 기부자님만의 <우산 같이 쓰실래요?> 캠페인을 하고 계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어요.
생각해보니 지금 30대 중반인 저 어렸을 적만 해도 비가 오는 날이면 낯선 사람들끼리 우산을 씌워 주곤 했던 기억이 떠오르더라고요. 근데 언젠가부터는 저도 해본 적이 없는거 같은 그런.. 오래된 빛 바랜 기억같은 순간이 기부자님 덕분에 떠올랐어요. 굵은 비가 갑자기 쏟아지는 장마철.. 눅눅한 기운을 없애줄 따듯한 이야기 나눕니다.^^    

 



1인 캠페인 <우산 같이 쓰실래요?>


글. 김경인(아름다운재단 기부자)


 


 

안녕하세요, 기부자 김경인입니다. 

헤헤, 제 스스로 제 이름앞에 기부자라는 세 글자를 붙이는 게 얼마나 뿌듯한지 모르겠네요.


제가 이렇게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여러분들 마음에 작은 불꽃하나 보내드리고 싶어서입니다.

제가 얼마전에 1인 캠페인을 시작했거든요.

모금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여러 사람이 힘을 함쳐 해야하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같이하자고 하기에 부끄러워서 정말 저 혼자하던 1인 캠페인 <우산 같이 쓰실래요?> 입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올해 서른인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 모르는 사람과 우산을 나눠쓴 적이 그래도 몇 번 있는 거 같아요. 

교복 입고 비를 맞고 가다보면, 동네 아주머니가 씌워주시기도 했고, 제가 우산쓰고 혼자 가고 있을땐 어떤 아저씨가 요 앞까지만 같이 가달라고 하신적도 있구요.



하지만 대학이후로는 그런 일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어느새부턴가 우리는 남에게 너무 관심이 없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지하철을 기다리다보면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귀에 이어폰을 꽂고 있는데 그게 어느 순간 내게 말 걸지마! 라는 표시같아 보이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너무 우리 주변에 벽을 세우고 있고, 그래서 세상이 너무 삭막해지고 있는 게 아닐까, 우리 동네도 더이상 그 동네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은 서로 소통하려는 생각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시작했어요.

제가 이 세상을 바꿀 수는 없겠지만, 어떤 거대한 담론을 가지고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작은 움직임을 하나 만들고 싶어서요.



내가 바뀌면, 세상이 바뀐다



우산을 함께 쓰다

"어디까지 가세요? 같이 쓰고 가요."



다행히도 저는 이 캠페인에 적절한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부끄럽지만 아직 독립을 못한 탓에, 딸바보 아버지를 둔 덕에, 비가 온다는 기상청 예보만 있으면 우산을 가지고 나갑니다. 그래서 남들은 비를 맞고 가는 길에도 저는 꼭 우산을 쓰고 가죠.

제가 퇴근길에 내리는 역은 나름 번화한 곳이라 사람도 많고, 모두의 목적지도 꽤나 제각각이라서 바로 시작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한 삼분만 걸어서 코너를 돌면, 아파트 단지가 있기 때문에 사람들의 목적지는 사실 거기서 거기에요. 

그럼 저는 대상을 물색하기 시작합니다.

우산이 없이 혼자가는 사람. 단, 남자가 아닐 것.(남자에게 여자가 먼저 우산 씌워주겠다 하기엔 부끄럽기도 하고, 아직은 무서운 나라니까요...ㅠ)


그렇게 대상을 포착하면, 슬슬 발걸음을 빨리해서 옆에서 걷다가 조용히 부릅니다.

"저기요, 어디까지 가세요?"

그럼 딩동댕, 다 제 집 근처입니다.

물론 다들 의아한 얼굴이시죠. 그건 왜 묻지?? 하는. 저라도 누가 갑자기 목적지가 어디냐 물으면 황당할 꺼에요.


"아, 그럼 같이 쓰고 가요."

제가 여태까지 만났던 분은 여대생과 막 취업한 직장인분인데, 하나같이 약간의 당황함과 쑥스러움, 놀라움이 뒤섞인, 하지만 분명한 미소로 "아, 정말요? 감사합니다"라고 답하세요. 


한분은 정말 신기한듯, 마치 제가 연예인이라도 된 듯, "아, 저 이런거 정말 처음이에요" 하시면서 조용하던 얼굴이 금새 밝아지세요.

그렇게 태어나서 처음 보는 사람과 나란히 같이 우산을 쓰고 가면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제가 지금 집에 산지 이십년은 된지라 원래 여기 길이 있었는데 없어져서 불편하다는 얘기를 하고, 요즘 학교생활은 어떤지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눈을 낮춰서 취직을 했더니 좀 후회가 되더라 하는 얘기도 듣고, 돈 잘 모아라 라는 훈수를 두기도 하지요. 


그렇게 거의 집앞에 가다보면, 경비실 앞에 가기전에 작은 실랑이가 벌어집니다. 

"여기서 갈께요." 

"아니요, 이왕 온거 앞에까지 가요."


한분은 그러셨어요, "이것도 인연인데 언제 한번 봐요."

아쉽게도, 순간 그럼 번호를 교환해야되나 하는 머뭇거림속에 헤어져서 동네 친구 만드는 건 다음으로 미루게 되었습니다. 



경계를 허물고, 함께 걷는 세상


그렇게 배웅을 하고 저희 집으로 방향을 돌릴때 얼마나 뿌듯하고 마음이 가벼운지요.

여자친구를 바래다 주고 돌아가는 남자분들의 마음이 이런걸까 싶기도 하구요.


그리고 저와 우산을 같이 쓰셨던 분들도 이게 계기가 되어서, 그분들과 같이 우산을 쓰는 사람이 또 있기를 바래봅니다.

제가 출근할때도 쭉 뻗은 큰 길로 가고, 주변에 여고도 있어서, 혹시 올 여름 또 비가 오거든 출퇴근길 가리지 않고 해보려구요.


제가 무척 흠모했던 선배에게 여섯살 라희라는 예쁜 이름을 가진 조카가 있습니다.

라희가 커서 학생이 되고, 숙녀가 될 때에는 

'우산 같이 쓰실래요?' 라는 말이 용기를 가지고 시도해야하는 말이 아닌 편안한 일상의 대화가 되기를, 

여자가 남자에게 우산 같이 쓰기를 권한다고 할 때, 주변에서 걱정할 필요없는 세상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 세상이 올 때까지 전 이 캠페인을 열심히 해보려구요.


우선, 너무 작아 이기적인 우산이란 소리를 듣는 제 우산을 조금 더 큰 걸로 바꿔야겠습니다.^^

여러분 모두 몸은 시원하고, 마음은 따뜻한 하루 되세요! 



 

 


두비두비 모금국 캠페인회원개발팀박해정


작은 변화가 일어날 때 진정한 삶을 살게 된다. (레프 톨스토이) 
True life is lived when tiny changes occur. (Lev Tolstoy)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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