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한 통 한 통이 쌓여 시작된 일

글. 장일호(시사IN 기자)



"해고 노동자에게 47억원을 손해배상하라는 이 나라에서 셋째를 낳을 생각을 하니 갑갑해서 작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시작하고 싶어서 보냅니다. 47억원… 뭐 듣도 보도 못한 돈이라 여러 번 계산기를 두들겨봤더니 4만7천원씩 10만명이면 되더라고요.


나머지 9만9999명분은 제가 또 틈틈이 보내드리든가 다른 9만9999명이 계시길 희망할 뿐입니다. 이자가 한 시간에 10만7000원이라고 하니, 참 또 할 말이 없습니다만… 시작이 반이라고…."


경기 용인에 사는 배춘환씨(39)는 지난해 12월 말, 한 언론사에 편지와 함께 4만7천원을 보냈습니다. 편지를 쓴 이유는 이랬습니다. 


“보증금 2000만원에 80만원으로 시작했던 신혼 생활, 결혼 7년 만에 수천만원의 빚을 떠안고 산 아파트의 원금과 이자, 뱃속에서 자라고 있는 셋째, 과로로 인한 우울증에 시달리는 남편…. 나는 이것만으로도 벅찬데, 저 사람들은 얼마나 막막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 사람들의 아이들은 또 어떡하지 싶고. 나처럼 저 사람들도 가족이 저녁에 같이 밥 먹고, 밤에는 푹 쉬고, 그리고 아침에 출근하고… 이런 꿈을 꾸지 않을까 싶어서...” 


배춘환씨 가족


그리고 배씨 부부는 파업은 정말 불법인지, 손해배상 소송은 해법이 없는건지 묻습니다.

네, 현재로써는 ‘법’이 그렇습니다. 노동3권이 헌법에 명시되어 있지만, 합법적인 파업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남발되는 소송의 해법이 없는 건 아닙니다만, 이를 완화시키기 위한 법 조항 하나 바꾸는 것조차 저항이 상당합니다.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손해배상 청구 총합계는 982억9843만3248원, 가압류 청구 총합계는 63억6300만원(민주노총 집계)입니다. 여기에는 최근 파업을 끝낸 철도노조에 제기된 손해배상 청구액은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2003년 1월이었습니다. 두산중공업 배달호씨가 손해배상과 가압류를 이유로 분신했습니다. 그 후 꼬박 10년입니다. 사용자인 기업은 더 이상 구사대를 동원해 폭력을 행사하거나, 농성장을 철거하지 않아도 되는 방법을 찾은 듯 보입니다. 기업은 법원에 노사분규로 인한 피해를 보상하라는 소송을 내는 것만으로도 깔끔하게 노동조합을 무력화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챘습니다. 

정부 역시 ‘법과 원칙’을 내세우며 소송전에 가담했습니다. 길고 긴 민사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와해되는 것은 노동조합만이 아닙니다. 한 사람이, 그의 가족이, 그리고 공동체가 차례차례 붕괴됐습니다. 기어이 손해배상 소송은 저 멀리 캄보디아 노사분규 현장까지 ‘수출’되었습니다.


배춘환씨의 편지가 언론에 소개된 이후 날아든 익명의 편지 한 통 안에는 꼬깃꼬깃한 4만7천원이 들어있었습니다. “10만 분의 1 정도의 대답이 되겠지만, 나머지 대답은 이 땅 위에 좀 더 좋은 것, 좀 더 옳은 것을 원하는 분들이 채워주시리라 믿어봅니다.” 

그 마음들을, 모아보고자 합니다. “더 이상 이런 일로 누군가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으로 써내려간 편지 한 통 한 통이 쌓여 시작된 일은 어떤 ‘기적’을 만들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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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해배상 소송 관련 기사 모음

<시사IN> 


<한국일보> 


<한겨레> 


<경향신문>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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